스킨쉽이란 단어가 영어 단어로는 인정을 받고 있지 않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음, 아무튼 요즘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면서 느끼는건데, 사람들이 (적어도 방송에서는) 스킨쉽에 상당히 예민한 듯하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런 스킨쉽에 그 스킨쉽을 시도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또 시청하는 사람도 모두 하나같이 '오~'하는 반응을 보이니 말이다.
그러다가 생각에 잠겼는데, 아무래도 나는 배울것이 많아도 너무 너무 많은거같다.
내가 너무 이성의 고삐를 풀어둔건지, 단지 본능에 충실한거 뿐인건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같이 있으면 좋은 사람이랑 손을 잡거나하는 몸을 부대끼고싶은 마음은 너무 당연한거니까, 그렇게 하는 것 역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손을 잡는다'라는 행동에 또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좋은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는 일은 좋기마련이니까, 그러니까 그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사는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손을 잡는 그 행동가짐에 '호감 이상의 호감'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듯하다. 그래서 모두가 스킨쉽을 즐기는 본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절제하고 정말 그 호감을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상대에게만 스킨쉽을 시도하는 것 같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해줄때 나는 대체 무엇을 듣고 있었던것인가? 아니, 귀를 틀어막고 안듣고있던건 아니다. 단지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동요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그런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하는 다른 행동을 오해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해를 하더라도, 그 오해가 풀림으로써 나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대중 매체 역할을 하는 방송에서 그렇게 행동을 하는걸 보아하니, 나는 필요없는 자아만 억센 우물안의 개구리구나 하고 느껴버렸달까? 그냥, 언제까지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들하고만 지낼 수 있는것도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지금보다 더 큰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내가 사회와 타협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자아가 또렷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사회를 모르는 바보 멍텅구리인듯하다.
안다, 그정도는. 내가 정말 늘 고맙게 생각하는 주위분이 해주는 좋은 충고는 늘 이런식이다. '너무 남의 말만 들어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니 본모습은 잃지마'
말이 쉽지... 어려운 일인거 안다. 하지만 너무나도 옳은 말이란것도 안다. 그냥, 정확이 어떠한 한주제를 가지고 생각해보기 전까진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있는 그런 광대한 개념정도였던거다. 이렇게 스킨쉽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전까지는 실천을 할정도로 이해하진 못했단 말인듯..
이렇게 문득 생각을 하고 슬슬 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내가 상대방을 대하는 행동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해서 행동을하려니, 뭔가 내 자신을 잃는것같아 조금은 분하고, 아직도 약간의 심술난 고집덩어리가 맘속 한켠에 남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변하면서 또 다른 내 자아를 찾아서, 좀 더 멋진 내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 이 어린 나의 심술쯤은 금방 잊고 넘어갈 수 있을꺼라 믿는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내가 성장이 아닌 타락을 하게 되지는 않게, 내 주위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날 따스하게 맞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히히
뭐, 그리고 그렇게 내가 아닌 '사회'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예는 이런거다.
나는 물론 생존의 본능에 의해서 음식을 찾아 먹는것일텐데, 살아가면서 그 음식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두게 되지 않았던가? 이젠 본능이기 전에 이성이 먼저 끼니를 챙겨먹고, 단지 살아가기 위해 먹기보단 그렇게 먹는 음식에서 스트레스 해소 등, 많은 행복이란 감정을 느껴왔지 않았나.. 뭐 사람들도 원래는 기분 좋아서 했던 그 스킨쉽에서 좀 더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겠지, 나도 이해를 못할 것은 아니지. 하는 그런 기분이였다.
그렇게 내 자신에게 음식이 생존의 필수품 이상의 존재가 된것처럼, 스킨쉽이 호감 이상의 표현으로 발전하면 될 듯하다.